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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1 피차 복종하라

사도 바울은 명령형을 사용하여 성령에 충만함을 받으라고 강력하게 선포한 후에 나머지 구절에서 헬라어 분사 다섯 개를 사용하여 아주 친절하게 성령 충만하게 된 상태 혹은 결과를 설명합니다. (Wallace, Greek Grammar, 639, 644-45) 본 절에서는 그 마지막입니다: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그렇다면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한다는 말의 구체적 의미는 무엇일까요?

“복종하다”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 ‘휘포타쏘마이’는 ‘아래에 놓다’는 문자적 의미와 함께 리더의 명령에 따르는 이미지도 담겨 있습니다. (Spicq, Theological Lexicon of the New Testament, 3:424n. 2. Recited from Hoehner, Ephesians, 716). 그뿐만 아니라 이 단어는 “존경한 만한 사람을 따르다”란 의미도 있습니다 (BDAG, 1042). 또한, 여기서 사용된 헬라어 중간태는 자발적인 복종을 의미합니다. (O’Brien, Ephesians, 400)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서로 복종(one another, mutual submission)하라고 권면합니다. 이는 공동체 일원들이 서로 사랑으로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갈 5:13). 사도 바울은 그 실례를 5장 22-6장 9절에서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결국, 성령 충만한 사람들은 공동체 안에서 한 성도로서 존경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으로, 다른 조건에 관계없이 서로 사랑으로 복종해야 할 의무를 갖는 것입니다. 이는 평등보다 훨씬 위에 있는 개념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고 합니다.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한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공포의 대상으로 복종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주님의 임재 가운데 주님을 공경하고 두려워하라는 의미합니다. 주님은 죄에서 구원하시기도 하지만, 죄를 심판 하시기 때문입니다. 전도서에서 솔로몬은 그의 인생을 끝에 의미심장한 말을 남깁니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 (전 12:13-14) 주님의 임재는 주님의 사랑과 심판을 동시에 말하기 때문에 주님의 임재 가운데 그분의 경외함을 느끼는 사람들은 당연히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최종 심판의 때는 주님의 재림입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한 사람들은 주님의 임재와 심판을 늘 생각하면서 서로 복종해야 합니다.

서로 사랑으로 복종하십니까? 아니면 복종 시키려 합니까? 복종시키려는 것은 주님이 원하시는 생각이 아닙니다. 서로 사랑으로 복종하십시오. 맨정신으로 불가능하지만 성령 충만한 사람은 가능합니다. 오늘도 성령에 취해 서로 사랑으로 복종하는 빛의 자녀 되시길 기도 합니다. 행복한 목사 김형중 드림(1/31) Copyrightⓒ 2017 by Hyung Joong Kim_어스틴 우리 침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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